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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Peace/- D of Blood

헌혈도 이제는 완전 경쟁시대?

by JoyKim 2009.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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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십자사에서 하는 ‘헌혈의 집’이랑 달라요? 그럼 다음엔 고민해봐야겠어요.”
“아무래도 시설이 깨끗하고 기념품 좋은 곳으로 가겠죠. 다음엔 ‘헌혈카페’로 갈래요.”

‘헌혈카페’가 서울시내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올해초 신림동과 대방동을 비롯해 최근에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명동과 대학로 등 6곳에 자리를 잡았다. ‘카페’라는 이름만큼 입구부터 화려하다. ‘헌혈은 생명, 당신만이 희망’이라는 홍보문구도 눈에 잘 띄게 했다. 조명은 따뜻한 느낌의 노란색으로, 음악은 헌혈자들이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조용한 선율을 택했다. 헌혈자들은 “길을 지나다 우연히 들렀다” “깨끗한 내부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문제는 ‘헌혈카페’와 기존 ‘헌혈의 집’이 운영주최가 다르다는 것. ‘헌혈의 집’은 적십자사가, ‘헌혈카페’는 한마음혈액원이라는 민간단체에서 운영을 맡고 있다. 더군다나 최근 문을 연 ‘헌혈카페’들은 ‘헌혈의 집’과 도보 2~3분 거리를 두고 붙어 있다. 이에 따라 자율경쟁 체제 도입에 따른 과잉경쟁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헌혈의 집’ 일선 간호사들은 ‘헌혈카페’에 대한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가까운 거리에 ‘헌혈카페’가 생겨 자칫 ‘헌혈의 집’을 찾는 발길이 줄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ㄱ간호사는 “헌혈자들은 적십자사를 보고 헌혈하는 게 아니다”면서 “다른 지점에서는 벌써 ‘헌혈카페’ 때문에 헌혈자가 줄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경쟁체제의 도입에 대해서도 “누군가 주유소도 거리제한이 없어졌다면서 헌혈 시스템의 자율경쟁을 이야기하던데, 헌혈은 휘발유와 다르다. 생명을 다루는 일”이라며 “헌혈문화 확산을 위해서라면 지방 등 기존 ‘헌혈의 집’이 없는 곳에 생겨야 하지 않나”라고 분개했다.

이들은 특히 ‘헌혈카페’에서 제공하는 기념품에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 현재 ‘헌혈의 집’에서 헌혈자들에게 제공하는 대표적인 기념품은 ‘3000원권 문화상품권’이다. 그러나 ‘헌혈카페’에서 제공하는 문화상품권은 5000원권이라는 것. ㄴ간호사는 “일본을 제외한 외국에서는 헌혈자들에게 아무런 기념품도 제공하지 않는다”면서 “순수헌혈을 지향해야 하는 시점에서 상대적으로 비싼 기념품을 제시하면 출혈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며 “기념품이 헌혈을 끄는 도구가 된다면 ‘매혈’과 뭐가 다르냐”고 말했다.

한마음혈액원 측도 할 말이 많다. ‘헌혈카페’에서 일하는 ㄷ간호사는 “헌혈자 중에 ‘지나가다 들어왔다’ ‘시설이 깨끗해서 좋다’는 분들이 많다”며 “‘헌혈카페’나 ‘헌혈의 집’이나 운영주체만 다를 뿐 헌혈을 독려할 수 있다면 결과적으로 좋은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최승주 한마음혈액원 대외홍보국장은 “서울에 ‘헌혈의 집’이 없는 곳이 없다. 적십자사도 노량진 등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는 두 군데 운영하고 있다”며 “채혈 후 6시간 내에 혈액제제(혈액의 성분별 분리)를 해야 하는데 우리는 전국적인 네트워크가 없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지방 개소는 어렵다”고 말했다. 또 기념품과 관련해서는 “적십자사의 3000원권 문화상품권은 대량으로 구입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며 “공통된 기념품을 제공하자고 요청했지만 거부한 것은 적십자사”라고 반박했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보건복지가족부 관계자는 “‘헌혈카페’는 건강한 헌혈인구의 확충을 목적으로 2004년 ‘혈액안전관리개선 종합대책’의 일환”이라며 “종합대책을 실행한 이후 꾸준히 헌혈율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복지부가 관리·감독을 맡고 있지만 ‘헌혈카페’의 세부적인 지역선정이나 기념품 등 사업비 책정까지 관여하기는 어렵다”면서 “적십자사와 한마음혈액원이 주기적으로 만나 협의를 하고 있다”며 “헌혈이 이뤄지는 혈액원은 기본조건을 갖춰야 복지부에서 허가가 나고 혈액에 대한 검사매뉴얼도 동일하기 때문에 혈액관리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헌혈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인터넷 카페 ‘헌혈하는 사람들은 다 모여라’의 오경애씨(33)는 “헌혈공간을 많이 만든다고 너도나도 헌혈을 하는 것은 아니다”며 “‘나중을 위한 대비’라는 생각으로, 헌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변해야 하는 게 먼저”라고 쓴소리를 했다. ‘헌혈카페’에서 만난 장승태씨(28)도 “시설을 늘리는 것보다 헌혈을 권장하는 광고와 홍보에 주력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형호씨(46·적십자사 헌혈봉사회 초대회장)도 “헌혈에 대한 장기적인 목적이나 대안이 없는 정부 정책이 문제”라면서 “적십자사의 독과점을 막기 위해 경쟁체제를 유도하는 것이지만 시설과 투자의 중복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앞서 민주노동당 곽정숙 의원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헌혈기념품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한마음혈액원의 ‘헌혈카페’ 개소로) 이제는 헌혈자원 확보를 위한 무한경쟁의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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