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아무에게나시비를 걸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다정하게 밥 먹었냐고 물어보는 친구에게,
"그럼 굶었을까봐?"
열심히 공부해서 남 주냐는 어른들에겐,
"예, 전 공부해서 남 줄 건데요?"
내일 지구가 망해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이에겐,
"왜 꼭 사과나무에요? 전 차라리 배추를 심겠어요."
그러다 화장실 벽에 붙어 있는 명언 한마디.
'다녀간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아름다운 뒷모습입니다.'
그 말엔 벌컥 혼자 화가 나기도 하죠.
그런 게 어디 있냐고... 왜 흔적을 남기지 않아야 되냐고...
그게 뭐가 아름답냐고... 난 흔적을 남기고 싶다고...
괜히 아무에게나 시비를 걸고 싶다고 했지만...
사실 '괜히'는 괜히가 아니고, '아무나'는 아무나가 아닙니다.
이젠 내가 완전히 괜찮아졌을 거라고 생각한 이들이
내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에 대한 얘기를 할 때...
그녀가 아주 잘 살고 있다거나,
그녀가 말도 안 되게 예뻐졌다거나,
그녀가 어쩌면 곧 결혼할 거 같다거나...
그런 얘기들을 할 때, 그럴 때 나는,
이젠 명분도 없는 화를 참기가 힘들어서...
이렇게 바보 같은 하루를 보내야 합니다.
두 발이 다 부르트도록 걸어 다녀도...
결국 발자국 하나 남기지 못하고 다시 돌아오는 것,
그런 게 여행이라면,
마음이 다 헤지도록 좋아했어도...
결국 내 이름 하나 그녀 삶에 남기지 못하고...
이렇게 보내주는 것이 사랑?
그런 건가요?
그녀가 잘 살고 있다고...
많이 예뻐졌다고...
곧 결혼할 것 같다고...
기쁜 소식을 전해들은 날,
이젠 영영 내 것이 될 수 없는...
사랑을 말하다...
푸른밤, 그리고 성시경입니다. "사랑을 말하다"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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