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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le Smile Zone/- Tok이야기@

네이트톡 - 저는 왕따에요..

by JoyKim 2009.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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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여기에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됐어요.

저희 집은 가난해요.

가난이 챙피하거나 부끄럽지 않았어요.

근데 고등학교에 진학 한 후로는

왜 우리 집은 이렇게 밖에 못사는지 우는 날이

매일이였어요.

아빠는 다른 지방에서 공사현장을 전전하고 계시고

큰 오빠는 낮에는 핸드폰 대리점에서 일하고

저녁 늦게는 또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 마련하고 있어요.

아빠느 돈 벌기 무섭게 돌아가신 엄마 병원비 빚 갚고 계세요.

그래도 이런 오빠와 아빠도 있고

더 힘든 사람들 생각하면 저는 행복한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친구들의 눈에는 아니였나봐요.

우리 집 사정이 이렇든 저렇든 상관 안하고 지냈던

중학교 친구들과는 달리 고등학교 친구들은 편을 갈랐어요.

편을 가르는 A라는 애가 있었어요.

얘는 부영아파트 사니까 놀지 마라.

XX아파트 사는 애들끼리 뭉치자.

제가 사는 집은 5층짜리 원룸 빌라였어요.

처음에 그 친구는 제가 사는 빌라가 저희 집껀줄 알았대요.

하지만 저희는 매일 월세도 벌벌 떨면서 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로는

인사를 해도 다 무시한다거나 심지어는 제가 거짓말쟁이가 되버렸어요.

전 단 한번도 그 빌라가 저희 집꺼라는 말을 해 본 적도 없어요.

A가 그냥 그렇게 판단했던 것 같은데...

A가아니여도 다른 친구들과 놀면 되지 라는 생각으로

저도 A를 무시하기로 마음 먹고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려고 했어요.

그런데 A가 이미 다른 친구들에게 나랑 놀면 가만 안두겠다는 등

그런 얘기들로 친구들을 협박했나봐요.

급식을 삼삼오오 짝지어서 먹으러 다니는 친구들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다른 친구들 점심 다 먹고 수업 10분 남길때 쯤 뛰어가 헐레벌떡 급식을 먹었어요.

A가 체육복을 안 가지고 온 날에는 제 체육복을 뺏어가 입고

저만 매번 수행평가 점수 깎이고 혼나고 기합받기 일수였어요.

교과서도 그랬고, 심지어 숙제도 그랬어요.

참다 못해 담임 선생님께 이 사실을 얘기했지만 알겠다고만 하셨고

별 다른 조치를 취해주지 않으셨어요.

선생님께 고자질 했다는 이유로 화장실에서 맞았어요.

그 날 오빠에게 사실대로 이야기를 다 했고

오빠가 화가 나서 학교로 왔어요.

A와친구들부모님까지 다 오게 되는 상황이였어요.

저희 오빠는 이렇게 이렇게 됐다 설명을 했지만 오히려 오빠가

A의부모님께욕을 먹었어요.

니가엄마가 없다더니만 그래서 니 동생도 너도 이꼴이냐구.

그래도 오빤 끝까지 저 지키려고 계속 따져봤지만

선생님은 대충대충 상황 피하려고만 하시고 사과하라고 악수를 했어요.

따지면 제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내가 왜 사과 해야 되는지.

그래도 사과를 하면최소한더 이상 괴롭히지는 않겠지 했는데

더 심해졌어요.

학교 밖에서까지괴롭히는거에요.

오빠한테 한번만 더 말하면 정말 다 끝인 줄 알라면서.

전 그상황이 겁도났고 저를 지켜 줄 사람도 없다는 사실에 너무 무서웠어요.

하나도나아지는건 없었어요.

학교 끝나고 집으로 가려는데A와 남자애들 여럿과 교문 앞에 있었어요.

전 피해서 후문으로 가려는데 그 친구들이 다가와서 하는 말이

얘네 보이지. 당장 학교에서 안 사라지면 어떤 꼴 당할지 모른다고.

너무 화가나서 참다가 그 친구한테 소리를 질렀어요.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다고 나한테 이러냐고.

그랬더니 갑자기 주저앉아서 울더니 엄마한테 전화를 했고

저한테 맞았다는 등 그 친구들도 보았다고 말하는 상황이여서

제 편을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그 친구네 엄마는 이런 애는 학교에서 당장 퇴학 시켜야 된다고 소리 지르셨고

저희 아빠가 학교에 달려오셔서 무릎 꿇고 사과하시고 겨우 끝났어요.

그리곤 집에와서 아빠의 우는 모습을 봤어요.

아빠가 힘이 되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그래도 학교는 끝까지 다니자는 말이였어요.

2학년이 되면 그 친구와 반이 갈리면 괜찮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하루가 1년 같던 시간을 견뎠어요.

2학년이 되고 저의 왕따를 주도하던 친구와는 반이 갈렸지만

A라는 친구와 어울려 놀던 몇몇의 친구들과 같인 반이 되고 말았어요.

그래도 A가 없으면 절 괴롭히지 않았었기에 그거 하나 위안 삼으면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또 1년을 지내야 된다는 생각을 하니 막막했어요.

그런데 A가 쉬는 시간마다 매번 찾아와 야 거지거지 그렇게 저를 부르고

제가 대답을 하지 않으면 제 자리까지 찾아와 머리를 잡고 왜 대답안해

이랬던 일도 있었어요.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지옥같아도 아빠 생각하고 오빠 생각하면서 견뎠어요.

그렇게 벌써 고 3이 되었어요.

친구들처럼 옆에서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도

수능이 뭔지 잘 모르지만 항상 마음으로 응원해주는 아빠와 오빠.

그 마음 누구보다 잘 알기에 아빠에게 또 오빠에게 힘이 되고 싶어요.

정말 간절히 원했어요.

스스로 강해지고 싶었고, 아빠의 믿음직한 딸이 되고 싶었어요.

아직 3차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이만큼이나 할 수 있었던 제 자신을 믿어볼려구요.


학교에서 왕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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