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BMW, GM, 벤츠 등 경쟁 자동차 업체 때문만은 아니다. 애플, 구글과 같은 IT 거인들의 자동차 시장을 향한 거침없는 행보가 시름을 배가시키고 있다.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검색업체가 자동차 업체와 경쟁 구도를 형성할 것이라곤 상상하기 쉽지 않았다. 간혹 ‘미디어의 경쟁사는 나이키가 될 수 있다‘는 미래학자의 전망이 제기되곤 했지만 긴박한 현실로 인식되기엔 논리적 빈틈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당면한 고민거리가 됐다. 특히 IT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경쟁 열위 상황인 자동차 업계는 자칫 시장의 주도권을 잃어버릴 수 있을 것이라는 한숨까지 나오고 있다.
구글과 애플의 자동차 시장 진입
국내 1위 자동차 사업자인 현대차는 구글과 애플의 자동차 진입 전략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무엇보다 자동차의 개념이 전통적인 운송 수단에서 스마트 기기로 전환되면서, 소프트웨어 기술을 갖춘 IT 기업들과 전면적인 경쟁이 불가피해졌다. 그래서 불안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스마트카의 OS 분야는 자동차 업체와 IT 기업의 격전장이다. OS는 탄탄한 소프트웨어 기술이 누적돼 있지 않으면 진입하기가 쉽지 않다. 현대차는 이 분야에서 일부 핵심 소프트웨어를 제외하면 구글, 애플 등에 경쟁력이 밀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애플은 차량 인포테인먼트(IVI) 소프트웨어인 ‘카플레이’를 이미 출시해 진영을 구축했고, 구글도 ‘안드로이드오토‘를 중심으로 자동차 업체 연합세력을 모았다. 현재 애플 진영과 안드로이드 진영으로 나뉘어 서로 다른 소프트웨어 위에서 스마트카 출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애플은 OS 개발에 그치지 않고 스마트카 관련 특허 개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2013년 ‘자동차 위치를 확인하는 방법’에 관한 특허를 출원했고, 같은 해 4월 ‘휴대용 기기를 사용해 자동차에 액세스하기”라는 특허도 신청했다. 애플은 이처럼 자동차 특허 관련 기술 특허에 상당히 공을 들이고 있는 모양새다.
자동차의 소프트웨어화
IT 거인들과 자동차 업체가 스마트카 주도권을 놓고 이어지고 있는 신경전은 일종의 헤게모니 쟁탈전 성격이 짙다. 자동차에 삽입될 소프트웨어의 주도권을 과연 누가 쥘 것이냐가 핵심이다. 스마트카 등장 이전까지 자동차 업계는 ‘텔레매틱스’(Telemetics)와 ITS라는 이름으로 IT 기술과 자동차의 접목을 꾀해 왔다. 텔레매틱스는 통신(Telecommunication)과 정보과학(Informatics)의 합성어로, 자동차와 컴퓨터·이동통신 기술의 결합을 의미한다.(참고 자료 : 텔레매틱스/ITS)
여기에 디지털 교통체계와의 연결성을 엮어 넣어 ITS라는 신교통체계를 구축한다는 목표를 삼고 있었다. 자동차와 IT 기술 융합은 이러한 그림 위에서 진행돼 왔다. 대략 2000년대 중·후반까지의 흐름이다. GM의 ‘온스타’, 포드의 ‘싱크’ 등은 텔레매틱스의 경향성에 기초해 출시된 차량 제어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스마트카의 주도권은 자동차 업체로 귀속되는 듯했다.
하지만 새로운 징후가 등장한다. 자동차의 소프트웨어화(softwarization)’다. 자동차에서 소프트웨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하고 동시에 ‘주행 제어 소프트웨어’, ‘편의 제어 소프트웨어’, ‘IVI 소프트웨어’ 등으로 분화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테슬라처럼 그 역의 흐름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모든 차량 관련 소프트웨어를 하나로 통합하려는 움직임이다. 전자의 흐름에서 볼 때 주행 제어 소프트웨어는 자동차 업체가 결코 외부에 내어줄 수 없는 핵심 소프트웨어다. 반면 IVI는 구글(안드로이드 오토), 애플(카플레이) 등이 막강한 점유율을 기반으로 비교적 손쉽게 차량 내부로 뛰어들 수 있는 영역이다.
나름 자동차 업체는 IVI 분야에서도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자체 생태계 구축을 시도했다. 하지만 포드가 MS와 협력을 통해 개발한 IVI 소프트웨어 ‘싱크’를 올해 4월 포기하고 블랙베리의 QNX로 갈아타면서 위기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포드는 2007년부터 차량 인포테인먼트 소프트웨어를 MS와 함께 설계해왔지만 생태계 구축과 이용자 만족도에서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그나마 포드는 상황이 나은 경우다. GM은 IVI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독자 개발 생태계 구축을 사실상 포기했다는 논란에 쉽싸였다. GM은 지난 9월 <기가옴>과의 인터뷰에서 독자적인 IVI 소프트웨어 ‘마이링크’를 접고 구글 안드로이드오토와 애플의 카플레이를 채택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 뒤 곧바로 이 보도를 부인하며 “포기한 적이 없었다“고 반박했지만 의구심은 완전히 가시진 않고 있다.
현대차 스마트카 소프트웨어 전략은?
현대차의 고민도 다르지 않다. 현대차는 현재 구글의 오픈 오토모티브 얼라이언스(OAA)에 합류한 상황이다. 물론 애플과도 적절히 협력하며 양손 전략을 취하고 있다. 독자적인 IVI 소프트웨어로 구글과 애플에 대항하기란 쉽지 않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구글과 애플을 합하면 97%에 달하는 시장점유율을 단일 자동차 업체가 극복하기란 무척 어렵다.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한다더라도 애플, 구글 규모만큼의 개발자를 움직이기엔 힘에 부치기 때문이다.
최병식 현대자동차 차량IT 선행개발팀 파트장은 지난 10월30일 서울과학기술대가 주최한 콘퍼런스에 참석해 “애플이나 구글과 앞으로 협상해야 할지, 전체 97% 차지하고 웬만한 지역의 커버리지를 갖는 업체와 손을 안 잡을 수 없다”라고 고민을 토로했다. 이어 그는 IVI 소프트웨어에서 주도권을 빼앗길 수도 있다는 위기감도 털어놨다.
“이런 과정에서 보면 우리 입장에서 고민이다. 시장에서 IT 기술이 발전하며 고객 니즈는 높아 가는데 자동차 업체 내부에서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 전략 수립 시 단순히 잘 만드는 것을 떠나서 기존 비즈니스 모델, 제조사 개념이 아니라 서비스 프로바이더라는 도전에 효과적으로 대처 못하면 현재 지위 빼앗기는 것 아니냐 고민한다. 애플과 구글 협력하는 게 기존 비즈니스 모델에서 유리한지 불리한지 여전히 고민 중이다.”
남은 건 핵심 주행 제어 소프트웨어 주도권
최 파트장은 구글의 자동차 업체 협력 전략은 상당히 포괄적이어서 더욱 큰 위협으로 다가온다고 말하기도 했다. 애플과 달리 구글은 협상 초기 자동차 내 거의 모든 데이터에 대한 접근 및 수집 권한을 OAA 협력 조건으로 제시했다는 것. 최 파트장에 따르면 IVI 제어 데이터 이외의 방대한 자동차 운행 정보를 제공해줄 것을 주문했다는 것이다.
이는 구글이 IVI 소프트웨어에 머물지 않고 차량 제어 소프트웨어로 언제든 치고 들어올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자동차 업체로서는 결코 주도권을 내어줄 수 없는 핵심 영역이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으로 차량의 시동을 켜고 끄거나 에어컨이나 히터를 작동시키는 기능, 원격으로 차량 문을 여닫는 기능 등은 현대차의 핵심 차량 제어 소프트웨어에 부분에 해당한다. 이를 위해 현대차는 ‘블루링크‘라는 소프트웨어를 꾸준히 업데이트하며 2.0버전까지 출시한 상태다. 기아자동차에는 ‘유보’라는 소프트웨어가 이 부분을 통제한다.
최 파트장은 “자동차의 핵심인 임베디드 코어 솔루션은 모두 개방하지 않고 별도 채널로 분리(isolation)시키는 정도로 열어주고 협력하고 있다”라며 “구글이 디스플레이 제어 데이터 이상의 데이터를 요구하고 있는데, OAA 회원사들도 거기에 대해 우려하고 방어적 자세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현대차도 구글 등에 방어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자동차 차량 제어 소프트웨어 핵심 부분까지 구글에 개방하는 선택은 피하고 있다. 하지만 이후 상황을 낙관하기엔 어렵다는 판단이다. 최 파트장은 “자동차는 IOT 산업에서 한 부분인데다 제품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IT 거인들의 흐름에) 따라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라며 헤게모니 장악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구글·애플의 무기는 사물 커뮤니케이션 장악
구글이 OAA를 통해 구사하는 전략은 비교적 뚜렷해 보인다. 차량 내 모든 소프트웨어를 제어할 수 있는 궁극적인 스마트카 OS로 안드로이드오토를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이미 구글은 자체 개발한 무인자동차를 통해 주행에서부터 IVI까지 안전성과 편의성을 검증 받았다. 약간의 논란은 있지만 기술적으로는 완비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자동차 업계를 설득하는 것이다.
여기에 사물인터넷(IoT) 시대가 빠른 속도로 도래하고 있다. 자동차 외부 사물과의 연결 통로를 누가 장악하느냐가 헤게모니 쟁탈전의 마지막 장으로 남아 있다. 외부와의 연결은 무엇보다 호환성이 주가 되는 기술 영역이다. MS가 PC와 모바일의 호환성 문제로 고전하고 있는 것과 같이 자동차 업체는 외부 사물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주도권을 놓칠 가능성이 높다. 독자적인 OS를 유지할 경우 외부 사물과의 호환성은 담보하기 쉽지 않다. 이 시장에선 구글과 애플이 우위에 존재한다. 최 파트장이 “따라 갈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은 맥락이기도 하다. IoT 시대 현대차가 반드시 풀어야 할 딜레마다.
현대차와 부딪히지 않을 것만 같았던 구글과 애플. 이제 현대차는 하드웨어 생산 기업이 될 것인지 테슬라처럼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완벽하게 통합한 혁신적인 자동차 기업이 될 것인지 선택해야 할 시점에 직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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