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쓸쓸하면서도 애틋하고, 애잔하면서도 아름답고,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다가 가슴 벅차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그럴까? 이런 때에 생각나는 것은 단 하나, 러브 스토리다. 경박하지 않고 품격 있는, 촌스럽지 않고 여운이 짙은, 가을에 읽기 좋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랑을 말하는 소설들이 필요하다. 그런 소설이 있을까? 있다. 그들의 정체는 다음과 같다.
1.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줄거리 :
소설은 아오마메가 성폭행범을 죽이러 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오마메가 탄 택시는 고속도로에서 꼼짝도 못한다. 그녀는 택시운전사의 말을 듣고 고속도로의 비상계단을 찾아 내려간다. 그때부터였을까. 세상이 뭔가 변한다. 아오마메는 보통의 1984년과는 다른 세계에 왔다는 걸 알게 된다. 그 세상은 무엇인가. '1Q84'의 세계다. 달이 두 개 떠 있는, 리틀피플이 존재하는, 첫사랑이 있는, 아주 위험한 세계다.<1Q84>는 그 세계에서 아오마메와 덴고가 겪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하루키가 10년을 준비했다고 말한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스케일이 굉장히 크다. 그러면서도 이야기의 흡인력은 얼마나 강렬한가. 한번 잡으면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이 소설의 진정한 매력은, 첫사랑의 애틋함을 손끝에 건네준다는 점이다.
감상 : 단 한번 손을 잡았을 뿐인 열 살 때의 첫사랑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남녀의 이야기는 얼마나 애틋한가. 청춘을 설레게 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그 커다란 세계에서 서로를 찾아가려는, 너를 위해서라면 내가 죽어도 좋다, 는 생각까지 하는 그들의 사랑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고 또한 두근거리게 만든다. 밤 늦게까지 뒤척이게 만드는 건 또 어떤가. 소설의 어느 순간, 첫사랑에 대한 애수와 애절함이 청춘을 다시 두근거리게 만든다. 아주 애틋하게.
2. 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줄거리 : <세계의 끝 여자친구>는 다양한 사람들이 나온다.그중에는 죽은 연인의 흔적을 찾으려는 작가가 있다. 그리고여자친구와 '세계의 끝'까지 다녀왔다고 말했던, 그리고 암으로 죽은 시인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은 죽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고 있는데 다들 뭔가 가슴을 아리게 한다. 뭔가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아니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추억하며 그리워하기에 그런 것일까? 소설 속 사랑은 세계의 끝에 다다른 것처럼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감상 :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는 슬프다. 하지만 김연수는 그들의 이야기를 단지 슬픈 것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그들을 추억하면서 사랑의 크기를 확장시킬 수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고 덕분에 가슴이 울린다.
3.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알랭 드 보통)
줄거리 :
남자가 우연히 비행기에서 여자를 만났다. 남자는 여자에게 반했다. 남자는 여자와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면서 데이트를 준비하는데 문득 생각한다. 나는 왜 반한 거지? 남자는 여자를 우연히 만날 확률, 전화번호를 알게 될 확률 등을 계산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이유를 집중분석하기 시작한다.감상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없다. 그런데 알랭 드 보통은 소설이라는 도구를 통해 그것을 찾으려 한다. 아! 이 과정은 하나의 철학책을 닮아 가는데 그 과정은 정말 멋지다. 지금 사랑을 하면서도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질문에 우물쭈물하는 사람이라면 빠질 수밖에 없는 소설이다.
4. 체실 비치에서 (이언 매큐언)
줄거리 : 1960년대, 아직은 사회가 보수적이었을 때, 청년 에드워드 메이휴와 사랑스러운 바이올리니스트 플로렌스 폰팅이 결혼식을 올린다. 이십대의 혈기왕성한 커플은 결혼식을 한 후에 체실 비치로 신혼여행을 떠난다. 그들의 미래는 장밋빛으로 물들 것 같았다.
하지만 플로렌스 폰팅에게 ‘성적’인 문제가 있다면 어떨까? 에드워드 메이휴가 그것을 이해해줘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들의 사랑은 무사히 존재할 수 있을까? 어긋나는 남녀의 마음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감상 : 사랑한다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사랑한다면, 상대방의 모든 것을 보듬어줄 수 있을까? <체실 비치에서>는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며 사랑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다. 차분하지만 격정적인 로맨스, 섬세하게 빚어진 보석을 볼 때처럼 감탄스럽다.
5. 동경만경 (요시다 슈이치)
줄거리 : 부두에서 일하는 료스케는 미팅사이트를 통해 대기업에서 일하는 미오를 알게 된다. 둘의 만남은 거의 ‘장난’스러운 수준이었다. 그들의 데이트 또한 진지하지 않았다. 그런데 둘은 왜 자꾸 서로에게 끌리는 걸까? 사랑한다, 고 말하기에는 직업차가 있어서 쉽지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어색하게 만나야 하는 걸까? 청춘남녀의 풋풋하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로맨스가 해질녘의 노을처럼 펼쳐진다.
감상 : 생명감이 있다. 소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건 아마도 그들의 고민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현대인’의 심리를 가장 잘 그리는 작가 중 한명이라는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이니 더 무슨 말을 하랴. 고독하면서도 그리운 사랑을 탁월하게 그렸으니 이 계절에 제격이다.
6. 외출 (김형경)
줄거리 :
인수는 아내의 사고 소식을 듣고 병원에 달려온다. 그래서 알게 된 것은 아내가 다른 남자와 놀러 가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다. 허망한, 가슴 아픈 인수의 앞에 비슷한 처지의 여자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서영. 그녀 또한 남편의 배신에 말을 잃었다.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인수와 서영은 왜 서로에게 끌리는 것인가? 치명적인 사랑. 동병상련의 아픔 속에서 위험한 사랑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감상 : 사람의 마음을 송두리째 뺏어가는 사랑이란 얼마나 위험한가. 또한 그것이 해서는 안 될 사랑이라면? 치명적인 사랑을 시작으로 쓸쓸함에 고독감을 잔뜩 담아낸 <외출>은 천상 가을에 어울리는 로맨스다.
7. 이현의 연애 (심윤경)
줄거리 : 여자의 이름은 이진, 그녀는 영혼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녀는 다른 것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오직 영혼의 목소리를 듣고 그것을 기록하는데 전념할 뿐이다. 그런 이진을 이현이 사랑한다. 이현은 이진이 정을 주지 않아도, 자신에게 사랑을 주지 않아도 좋다고 말하며 함께 살자고 한다.
하지만 이현은 정말 그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까? 상대방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곧 위험이 되고 둘의 관계는 헝클어지기 시작한다.
감상 : 강렬하다. 여자가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것임에도 여자를 사랑했고 소유하려 했던 남자의 이야기는 자극적이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건만 읽은 이후 지금까지도 장면 하나하나가 기억에 남는다. 특유의 쓸쓸함이 가히 예술적인 이 소설 또한 가을에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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