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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에 대해 정리 - 신은 죽었다. -

by JoyKim 2008.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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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전통적인 서구 종교, 도덕, 철학에 깔려 있는 근본 동기를 밝히려 했으며, 신학자, 철학자, 심리학자, 시인, 소설가, 극작가 등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계몽주의라는 세속주의의 승리가 가져온 결과를 반성했다.

"신은 죽었다"는 그의 주장은 20세기 유럽 지식인의 주요한 구호였다.

[생애]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5살 때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나움부르크로 이사하였다.

포르타 김나지움 시절에는 음악과 그리스·로마 문화에 심취하였고, 1864년 본대학에서 신학과 고전문헌학(古典文獻學)을 배웠으나 리츨 교수를 따라 라이프치히대학으로 옮겼다.

이 시절 동안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받고, 바그너와 음악을 통해 깊은 관계를 맺었다.

69년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스승 리츨의 추천을 받아 스위스 바젤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70년 프로이센―프랑스전쟁이 터지자 위생병으로 종군하였으나 병에 걸려 제대한 뒤 평생 병고에 시달리는 몸이 되었다. 당시 유명한 작곡자로 알려졌던 바그너의 음악에 심취했으며, 특히 비극 <트리스탄과 이졸데 (Tristan und Isolde)>를 듣고 매혹된 나머지 처녀작인 <비극(悲劇)의 탄생 (Die Geburt der Tragdie, 1872)>을 저술하였다.

이 저서는 쇼펜하우어의 형이상학을 빌려 그리스비극의 정신이 진실한 문화창조의 원천임을 인식하고, <아폴론형><디오니소스형>의 두 가지 원리로 그리스비극을 독창적으로 해석하였다. 그리고 그 정신을 현대에서 부흥시킨 것이 바그너의 음악임을 논하여 그의 신예술운동을 지원하려 하였다. 뒤이어 발행된 <()시대적 고찰 (Unzeitgemsse Betrachtungen, 1873-76)> 4편은 프로이센-프랑스전쟁의 승리에 도취되어 있는 독일 국민과 문화에 통렬한 비난을 가하는 한편 유럽문화에 대한 회의를 나타내고 천재(天才)를 위대한 창조자로서 문화의 이상으로 삼았다. 1편은 헤겔학파의 신학자 슈트라우스의 <교양(敎養)을 가진 속물(俗物)>에 대한 공격으로서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으며,

2편은 역사를 기념비적·골동품적·비판 적인 3종류로 구분한 역사주의에 대한 비평이었다.

3편은 쇼펜하우어를 찬양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동시에 니체 자신의 실존적 결의의 표명이기도 하다.

4편은 바그너가 바이로이트에서 공연한 악극 <니벨룽겐의 반지>에 관한 찬사이다. 그러나 이 저술을 계기로 바그너와 절교하였으며, 이리하여 천재적인 재질에 의하여 새로운 게르만적 헬레니즘문화를 세우려고 한 낭만적 이상은 무너졌다. 그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어 79년 대학에서 퇴직하고 알프스산과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해변을 전전하는 투병생활을 하면서 사색을 계속하여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Menschliches, Allzumenschliches, 1878-80)> <서광 (Morgenrte, 1881)> <기쁜 지혜 (Die frhliche Wihssenschaft, 1882)>등을 저술하였다.

이 저서들은 잠언(箴言)과 사상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속에서 종래의 낭만주의를 파괴하고 실증주의적·심리적 요소를 드러내고 있다. 83-85년에 걸쳐서는 전에 알프스 산중에서 깨달은 <영겁회귀> 사상을 기반으로 한 <초인(超人)>의 이상을 그린 철학적 서사시인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Also sprach Zarathustra, 1883-91)>를 저술하였다. 이 저서에 니체의 사상이 상징적으로 모두 표현되고 있으나, 이 추상성에 불만을 품고 구체적 논문식으로 해설한 <선악(善惡)의 피안 (Jenseits von Gut und Bse, 1886)>을 저술하였다.

이 저술에서는 고귀한 정신적 귀족의 육성을 주장하고 장래의 위대한 입법자를 암시하는 한편 퇴폐적인 근대의 여러 현상과 단순히 객관에만 치우치고 있는 과학정신, 동정(同情)에 기반을 두었다는 그리스도교적 도덕, 역사의식의 과잉 등을 예리하고 독특하게 비난하고 있다.

그 후 <도덕계보 (Zur Genealogie der Moral, 1887)>가 유럽 윤리사상의 비판서로서 출판되었으며, 이때 이미 <권력에의 의지 (Der Wille zur Macht)>가 준비되었으나 완성을 보지 못하고 그의 사망 후에 유고(遺稿)만이 수집되어 출판되었다.

88년에는 <바그너의 경우> <우상(偶像)의 황혼> <이 사람을 보라> <안티 그리스도> <니체와 바그너>등이 저술되었다.

그 중 <이 사람을 보라>는 그의 자서전이라 할 수 있다.

891월 정신착란 증세에 빠져 바이마르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여동생의 간호 아래 여생을 보냈다.

니체는 근대유럽의 정신적 위기를, 일체의 의미와 가치의 근원인 그리스도교적 신의 죽음, <신은 죽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 것으로 단정하고, 여기에서 발생한 사상적 공백상태를 새로운 가치창조에 의해 전환시켜 사상적 충실을 기했다. 이리하여 신 대신 초인을, 불멸의 영혼 대신 영겁회귀를, ()과 참() 대신 권력에의 의지를,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기쁨 대신에 심연(深淵)을 거쳐서 웃는 인간의 내재적(內在的) 삶으로 가치를 전환시켰다.

'신의 죽음'과 그에 따른 모든 전통가치의 상실을 선포했다. 그는 유일하게 지지받을 수 있는 인간의 반응은 허무주의적 반응, 즉 신이 없음이며, 삶의 목적과 의미에 관한 문제에는 답이 없다고 주장했다. 니체에 따르면, 신의 죽음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자신을 완성하며 그 본질을 발견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의 사상은 원숙한 문장과 함께 주로 문학자들에 의해 높은 평가를 받았고, 시대 변천과 함께 사상적 영향을 끼치면서 오늘날의 실존주의자들에 의해 그들의 선구자로 불리게 되었다.

[작품]1. 비극(悲劇)의 탄생(誕生) (Die Geburt der Trag Udie)트리스탄과 이졸데 (Tristan und Isolde)의 영향을 받은 니체의 처녀작. 1872<음악 정신에서의 비극의 탄생>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가 86<자기비판 시도>를 머릿글에 넣어 <비극의 탄생 또는 그리스정신과 염세주의>로 제목을 바꾸어 출판되었다.

고전문헌학 연구를 토대로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 사상을 원용하면서 그리스비극의 성립과 변천을 더듬고, 나아가 소크라테스 이후 에우리피데스 등이 전개한 주지주의의 비판을 통하여 바그너의 음악에서 근대 독일문화의 헬레니즘적 생명부흥을 기대한다는 내용이다. 종래 고대관의 중심이었던 조화로운 그리스적 청랑(晴朗)함은 아폴론적 가상(假象)에 지나지 않으며 그 배후에 더욱 근원적인 음악 정신, 충동적·파괴적인 디오니소스적 도취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여 새로운 역동적 그리스관을 제시하였다.

1-1. 트리스탄과 이졸데 (Tristan und Isolde)켈트족의 전설을 바탕으로 한 유명한 중세의 사랑 이야기에 나오는 2명의 주인공.

이 켈트족의 전설은 실제로 고대 픽트족(브리튼 섬 북부에 살았던 고대인)의 한 왕의 이야기에서 따온 것이다.

현재 남아 있는 여러 가지 유사한 전설들을 파생시킨 원래의 시는 전해지지 않고 있지만, 그것이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현재 남아 있는 초기 이본들을 서로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원래 시의 주요내용을 추정해보면 다음과 같다.젊은 청년 트리스탄은 이졸데 공주의 도움을 얻어 그의 아저씨이자 콘월의 왕인 마크를 도울 목적으로 아일랜드로 모험을 떠난다.

아일랜드에 도착한 그는 그 나라를 괴롭히고 있던 거대한 용을 퇴치함으로써 임무를 성공리에 완수한다. 집으로 돌아오던 중에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불운하게도 이졸데의 어머니가 자기 딸과 마크 왕을 위해 준비해놓은 사랑의 묘약을 마시고 만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불후의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 사랑은 모든 위험에도 굴하지 않고 고난을 이겨내지만 왕에 대한 그들의 충성심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이 이야기는 대부분 서로 대응되는 2개의 기본 줄거리로 구성되어 있다. 마크 왕과 신하들은 두 연인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하지만 두 연인은 그들을 잡으려고 꾸며놓은 함정을 빠져 나온다. 그러나 결국 마크 왕은 그들의 유죄를 입증하는 증거를 찾아내어 벌을 내린다.

화형장으로 가던 트리스탄은 절벽에 있는 예배당에서 기적적으로 탈출해 마크 왕이 나병 환자들의 무리 속에 집어 넣어버린 이졸데를 구해낸다. 두 연인들은 모뢰아 숲으로 달아나 거기서 지내던 어느날 마크 왕은 이들이 칼을 칼집에서 빼내어 두 사람 사이에 놓은 채 잠들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후 곧 두 연인은 마크 왕과 화해를 하고 트리스탄은 이졸데를 마크 왕에게 돌려주고는 나라를 떠난다.

브르타뉴에 도착한 트리스탄은 '이졸데와 이름이 같고 아름답다는 이유로' 브르타뉴 왕의 딸인 '흰 손의 이졸데'와 결혼을 한다.

그러나 그는 단지 이졸데와 이름이 같다는 점에서만 그녀를 자기 아내로 여길 뿐이었다.

독이 묻은 무기에 부상을 당한 트리스탄은 원래의 이졸데에게 전갈을 보내 그녀만이 자기를 치료해줄 수 있으며 만약 자기를 치료하러 올 생각이라면 타고 오는 배에 흰 돛을 달고 그렇지 않으면 검은 돛을 달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비밀을 알아챈 질투심 많은 트리스탄의 아내는 옛 애인을 도울 생각으로 서둘러 오는 이졸데의 배를 보면서 트리스탄에게 배가 검은 돛을 달았다고 거짓말을 한다.

트리스탄은 얼굴을 벽을 향해 돌린 채 죽고, 너무 늦게 도착해서 연인의 목숨을 구하지 못한 이졸데도 마지막으로 트리스탄을 껴안고 죽고 만다. 이들이 죽고 나자 기적이 일어난다.

두 그루의 나무가 그들의 무덤으로부터 솟아나와 서로 가지를 뻗쳐 얽히더니 다시는 풀리지 않게 되었다.1-2. 디오니소스형과 아폴론형 (Dionysisch·Apollinisch )그리스신화의 주신(酒神) 디오니소스의 도취적·창조적 충동과 태양신 아폴론의 형식·질서에 대한 충동과의 대비에서 유래한 용어.

디오니소스적·아폴론적이 라고도 한다.

셸링은 내용이 형식에 우월하는 시와 양자가 조화된 본래의 시와의 대립을, 니체의 스승 리츨은 피리와 하프의 음색의 대비를 이러한 대립개념으로 인식하였다.

그러나, 이런 대립개념이 확산된 계기는 니체의 <비극의 탄생(1872)>이다.

여기서 니체는 그리스조각의 맑고 밝으며 사물을 관조하는 분위기를 아폴론적, 음악의 격정적인 약동을 디오니소스형이라고 표현했다. 온갖 것을 가상(假象) 속에 형태화·개체화하는 조형예술의 원리로서의 아폴론적인 것이, 개체를 도취로써 영원한 삶 속에 해체하는 음악예술의 원리로서의 디오니소스형인 것과 결합되어 그리스 비극이 탄생한다.

이 비극은 일단 낙천적·이론적인 소크라테스주의 탓으로 멸망했지만, 바그너의 악극(樂劇) 속에 재생한다고 젊은 니체는 생각했다. 다만 훗날의 니체는 이 대립개념을 쓰지 않고 영원히 창조하고 파괴하는 생()의 긍정이라는 그의 철학의 핵심을 <디오니소스형>이라고 규정했다.

그리스예술의 발전에서 추출해 낸 니체의 이러한 개념은 훗날 예술체계적 구분의 원리 및 역사원리 혹은 예술제작의 전형으로서 널리 채용되었다.

2.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Also sprach Zarathustra)니체의 저서. 4부로 된 철학적 산문시로 1883-85년에 저술되었다.

니체 자신의 이상적 분신(分身)인 차라투스트라(조로아스터) 를 통해 초인(超人), 권력을 향한 의지, 영원회귀(永遠回歸) 등 니체의 중심사상을 교설한 설교집의 모습을 띠고 있다.

서설(序說)과 제1부에서는 10년간 산상(山上)의 고독한 생활을 보내던 주인공이 <신은 죽었다>는 깨달음을 얻고 인간세계에 내려와 초인의 이상을 논한다.

2부에서는 영원회귀의 사상이 그의 내면에서 성숙해가나, 이를 세계에 전하기에는 역량이 부족함을 느끼고 더욱 성숙한 인식을 위해 산으로 되돌아간다.

3부에서는 영원회귀사상의 성숙을 기다리며 삶의 절대적 긍정을 노래한다.

4부에서는 동굴생활을 하던 중 7명의 더 높은 사람을 만난 차라투스트라가 초인도, 대중도 아닌, 고뇌하는 인간들에게 동정을 가진다.

그러나 이러한 동정은 그에 대한 새로운 유혹이요 시련이다. 그는 결국 동정이라는 마지막 시련을 이기고 성숙한 영원회귀사상을 알리기 위해 홀로 산을 떠난다.

[용어]초인 (超人 ubermensch)인류의 존재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뛰어난 인간.

'초인'이란 말은 괴테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사용했지만, 프리드리히 니체가 특별히 그의 저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Also sprach Zarathustra> (1883~85)에서 의미심장하게 사용한 용어이다.

이 뛰어난 인간은 오랜 진화의 산물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초인은 우수한 잠재력을 지닌 어떤 사람이 완전히 자기 자신을 지배하고 인습적인 그리스도교의 '대중도덕'을 말소하고 자기의 고유한 가치를 창조할 때 나타난다.

이 가치는 내세가 아닌 현세의 삶에 깊이 뿌리 박고 있다. 니체는 결코 '독일 나치스'라는 잔인한 초인을 예상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니체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영혼을 가진 카이사르'였기 때문이다.

니체 관련사이트http://www.pitt.edu/ ~wbcurry/nietzsche.html

http://www.cwu.edu/ ~millerj/nietzsche/index .html

http://www.usc.edu/ ~douglast/nietzsche.html

http://armdown.net/

http://myhome.shinbiro .com/~conanoc/Nietzsche /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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