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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의 전설_차붐[축구]

by JoyKim 2006.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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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차붐선수를 존경한다 난 어릴때부터 차붐을 보고자라났다. 나도 그선수처럼돼고싶다. - 오웬

여기가 차붐의 나라입니까 그는 나의 우상입니다. - 발락

차붐은 나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큰 영웅이다. - 피구

난아직 어리다 그러나 차범근은 세계최고의 공격수이다. - 마테우스

난 차붐을 낳은 어머니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그가 독일에있었다면어 어김없이 독일 대표팀으로 넣고싶다. - 베켄바우어

차붐은 진정으로 축구를 할줄안다. - 펠레

내가 그런공격수랑 붙지 않은게 정말 다행이다. - 파울로 말디니

내자신은 어느정도 성공한 공격수로 평가받지만 차붐정도는 아니다. - 클리스만

▶차범근은 누구인가

=77년 대통령배 축구대회(박스컵). 말레이지아 전 1:5로 뒤지던 상황.종료 5분 남겨놓고 4골의 소나기 골

=79년 프랑크 푸르트 입단 8월 당시 세계 최고 리그로 불리던 분데스리가 데뷔.데뷔전 상대는 도르트문트. 스타팅으로 75분까지 뜀. 어시스트 기록.최고권위 축구전문지 'KICKER' 선정 주간 베스트11

=세번째 경기 슈투트가르트 전. 헤딩으로 승리결정 골. KICKER 선정 이주일의 골

=네번째 경기 바이에른 뮌헨 전. 그라보스키 어시스트로 선취골

=다섯번째 경기 최강호 보루시아MG 전. 한가운데 돌파에 이어 찬 공, 왼쪽 포스트 맞고 골. 선취골. 세경기 연속 골. 이날 KICKER, 처음으로 차붐이라는 단어 씀

=9월 강호 함부르크 전. 페차이의 어시스트를 받아 강슛. 그라보스키 센터링, 헤딩 슛. 30M 중거리 슛. 첫 해트트릭 기록.11월 일본의 오데쿠라가 소속된 쾰른 전. 두 동양인의 대결로 관심 집중.차범근 선취골, 결승골로 두골 기록. 오쿠데라 헛발질 7번. 차붐 대승. 프랑크 푸르트 3:1로 승리

=일간스포츠 톱기사 이때 부터 MBC 차범근 경기 녹화방송 시작. 매주 월요일 밤. 최고 시청률

=12월 UEFA 컵 출전. 첫번째 경기 레알 마드리드를 맞아 차, 선취골을 넣었으나 1:1 무승부..두번째 경기 AC밀란 전.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강슛. 포스트 맞고 튀어나왔으나,골대 5초이상 흔들림. 특종 기사실림. 3:2로 프랑크 푸르트 승리

=80년 3월 UEFA 컵 결승전. 보루시아 MG와 1차전. 당시 20세의 나이로 '게르만의 혼'이라 불리던 마테우스(90년 월드컵 MVP),갈색 폭격기 '차붐' 전담마크 특명. 신문 톱기사

=UEFA 컵 결승전. 보루시아 MG와 2차전. 역시 마테우스 차붐 전담 마크.마테우스 속수 무책. 차붐 대활약. 우측사이드 마테우스 여유롭게 제치고 어시스트. 1:0 프랑크푸르트 승리. 차붐, 이날의 선수. 원정팀 득점 우선권으로 프랑크푸르트 창단이후 첫 UEFA컵 우승

경기 후 마테우스 인터뷰 "나는 아직 어리다. 하지만 차범근은 현재 세계 최고 공격수다"

=79~80 시즌 득점 랭킹 7위 랭크. 세계 상승세 베스트 4 선정됨.세계축구 베스트 11 선정됨. 연봉 독일에서 세번째 액수. 협상 타결.독일 대표팀 감독 차붐 귀화 추진. 실패. 81시즌 레버쿠젠과의 경기에서 겔스도프에게 육탄공격 받아 심한 부상. 프랑크푸르트 팬들 레버쿠젠까지 가서 겔스도프 살해 위협 소동. 경찰 출동

=83년 레버쿠젠으로 트레이드.프랑크푸르트 팬들 울음바다.85~86시즌 분데스리가 MVP 및 득점 4위.86년 한국대표팀 선수로 멕시코 월드컵 출전

=88년 다시 UEFA컵 출동. 차붐 스페인 에스파뇰을 맞아 극적인 3:3 동점골 터뜨림.5만 관중 차붐! 환호. 승부차기로 레버쿠젠 역시 팀 창단 이래 처음으로 UEFA컵 우승.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출장 최다골 기록 분데스리가 308경기 98골...차범근 선수가 세운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골 기록은 스위스 출신 사퓌자 선수에 의해 지난 99년에 경신. (106골/218경기)

<안티축구협회 홈페이지에서 발췌>

차범근이 한 일에 대해서는 딴지일보에서 기막히게 묘사를 해놓았기에 이를 인용한다.

"느낌이 잘 안오신다..?

박찬호가 데뷔 첫해부터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뛰어 데뷔하자마자 메이저리그를 통털어 투수부문 7위의 성적을 거두고, 그 다음 해 동양인 최초의 사이영상을 수상하고, 얼마 후 동양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MVP를 먹고, 다저스를 월드시리즈 결승에 두번이나 진출시키고 그때마다 마지막 7차전에서 완벽한 투구로 승리투수가 되는 장면을 상상해 보시라.

그리고는 그가 마운드에 등장하면 관중들이 전부 찬호를 연호하며 박수를 치고,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어 유니폼이 영구전시되고 도대체 박찬호를 모르는 미국시민이란 없는 그런 상황... "

차범근이 한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가 어떤 인물인가.조선일보에서조차 대한민국 50년을 만든 50대 인물에 선정한 위인이다.1998년 독일 축구역사가협회에서는 20세기최고의 아시아선수로 차범근씨를 선정했다.1999년 축구잡지로는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월트사커지는 차범근씨를 잊을수 없는 100대 스타로 선정했다.그가 차지했던 분데스리가 MVP 는 지금의 세리에 리그의 MVP나 다를바가 없다.80년에는 세계축구 베스트 11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가 바로 우리 대한민국인 차범근인 것이다.그가 바로 변변한 홈페이지 하나 없이 매장당해버린 대한민국이 낳고 대한민국이 버린 차범근인 것이다.

지금까지의 국내 축구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내고 가장 위대한 선수인 차범근.

차범근 축구교실의 강태풍군은 한 인터넷까페에 차범근씨의 사진과 함께 이런글을 올려놓았다.

"저 뒤에 망치들고 계시는 저분 저분이 바로 우리 감독님 이시다.우리다칠까봐 망치들고 얼음 깨는 저분. 저분이 바로 세계속의 갈색 폭격기 우리 감독님이시다."

그리고 저기 작은 축구교실에서 아이들이 다칠까봐 묵묵히 얼음을 깨고 있는 허리숙인 저 사람이 바로 우리가 묻어버린 .. 그를 버린 한국축구를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차범근인 것이다.

출처 : 차붐보이 블로그

이 블로그에 더 많은 자료와 사진이 있습니다.~

차붐 완전 정복 차붐보이 블로그~~

차 붐에 대한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저는 특히, 국대 감독 시절에 대한 질타가 80년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축구선수의 자질에 대한 의구심까지 불러일으키는 내용들을 보면서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우리나라 사이트들의 내용만 볼 때에는 워낙에 이런 풍토니 하고 넘겼지만 외국 사이트들을 찾아가면서는 아직도 그를 기념하는 많은 자료들을 보며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많은 면모를 보았습니다. 물론 외국도 스트라이커가 몇 경기째 골 소식이 없으면 언론에서 의혹의 눈초리를 세우고 팀이 패배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홈팬들이 감독을 마구 욕합니다. 하지만 이미, 그것도 화려하게 선수생활을 마친 레전드급 선수에 대한 예의는 지키죠.

물론, 우리는 직접 그의 분데스리가 경기를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홈팬이 홈팀의 선수를 기리는 마음 정도만 가진다면 한국 사람이 한국인 선수에게 기본적인 예우를 갖추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습니다.

에 에, 괜히 무게 잡았다. 뭐, 차붐의 전도사가 되려고 그러는 건 아니고 또 그만큼 알지도 못한다. 독일 월드컵도 얼마남지 않았는데 독일에서 뛴 우리나라 선수를 다시 돌아보자는 뭐 그런 취지랄까.. 일부러 무거운 쪽은 피해가보려고 했지만 또 섣부른 인터넷의 논객들이 많은지라.. 에고 윙포워드인지 센터포드인지 싸울 힘들이 있으면 하는 생각이.

쨌건, 이제 레버쿠젠 시절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 시점에서 괜히 부담스럽게 방문자도 많아지고 해서 '초간편, 소문은 가라, 기록으로 보는 분데스리가 10년'이라는 포스트를 만들어 보았다.

차범근이 전에 선수였어요? 정도의 사람들에게도 초간편(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선수는 아니에요ㅜㅜ).

축구전문가인 나머지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에게도 소문 그만, 기록만 봐도 간단한 선수는 아니죠? 라는 뭐 그런 두가지 깊은 뜻이... 음. -_- (퍽퍽퍽)

차범근 Cha Bum K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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